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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인식과 한국식 다문화 정책의 실상

Seoul, 한수경, 2012년, 1월 20일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있다. 

봄엔 나무에 싹이 나고, 여름엔 나무에 잎이 무성하고, 가을엔 낙엽이 지고, 그리고 겨울엔  벌거벗은 나뭇가지만이 남는다. 사계절의 자연현상을 빗대어 한 인간이 태어나 성장하고 황혼기를 거쳐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말하기도 한다. 아무도 이 자연의 섭리를 부정하지 않으며, ‘진리’로 받아들인다.

헌데 누군가 “낙엽은 여름에 떨어져요”라고 주장한다면? 또 그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고 그것이 사실이고 진실이라고 우긴다면?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처럼, 낙엽이 여름에 떨어진다는 그의 주장에 한국에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까? 이것이 초등학교 교실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가정한다면, 아마도 이것을 주장한 아이는 다른 아이들로부터 바보라고 조롱과 무시를 당하며 왕따를 당할지도 모른다. 또 어떤 교사는 장난하느냐 윽박지를지도 모른다.

다시 계절에 관해 한국인들에게 아주 익숙한 사지선다형 객관식 질문을 하나 던져보겠다. 

질문)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 사람들이 외로움, 쓸쓸함과 고독감을 느끼는 계절은 어느 계절입니까? 1) 봄 2) 여름 3) 가을 4) 겨울

여러분은 몇 번의 답을 선택했습니까? 한국인들은 당연 3번 가을을 선택했을 것이고, 미얀마(버마)인들은 2번 여름을 선택했을 것이다. 

“한국에선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는데, 미얀마에선 여름에 낙엽이 떨어져요. 고등학생들의 대학입시가 있고 입시에 떨어진 학생들이 실망하는 시기가 여름이고, 한창 여름인 2월에 낙엽까지 떨어지기 때문에 외롭고 쓸쓸해요... 한국에 와서 깜짝 놀랐어요. 여름에 낙엽이 떨어지지 않는 거예요...우린 여름에 외로워해요.”

MWTV 대표 아웅틴툰, photo: Su-Kyung Han

이주민방송 MWTV 현 대표인 아웅틴툰씨의 말이다. 미얀마에선 계절도 사계절이 아니라 여름, 우기, 건기, 즉 ‘뇌야디’, ‘모야디’, ‘싸웅야디’로 세 계절이다. 단일민족국가가 아닌 미얀마엔 135개 민족들이 평화로이 공존하며, 하나의 언어가 아닌 141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는 다민족, 다종교, 다언어 국가로 말 그대로 다문화사회다. 미얀마뿐이 아니라 그 이웃하고 있는 다른 아시아권 대부분이 다문화사회들로 수많은 소수민족들과 수많은 언어, 종교가 어우러져 공존한다. 미얀마, 부탄, 방글라데시, 라오스 네팔 등의 국경지역엔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국적 없는 사람들도 살고 있다. 천 개 이상의 언어가 있는 인도는 말할 것도 없고, 아프리카 국가들도 수 백 개의 언어들을 사용하는 다문화국가들이다.

자신들을 단일민족이라며 스스로를 세뇌시켜오고 주장해온 한국인들과 국민(민족)국가를 세계로 퍼뜨린 유럽인들이 그들의 ‘세계관’과 ‘다문화’ 개념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다문화주의는 새로운 세계현상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늘 존재해온 사실에 불과하다. 단지  국민(민족)국가를 기준으로 삼았던 서구 국가들이 이주민들의 증가로 변화된 사회를 뒤늦게 다문화사회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불과하다. 특히, 세계화의 영향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서구 혹은 유럽 중심적 사고에서 유래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인간은 항시 자신이 처한 환경과 이를 바탕으로 한 경험의 세계에서 많은 것을 규정하고 단정한다. 또 그것을 진실이라 믿는다. 더 나아가 자신들의 경험의 세계를 기준으로 삼고 평가를 내린다. 그것들이 얼마나 편협한 지식세계와 좁은 체험세계에 근거한 것인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많은 경우에 있어, 자신의 지식이 얼마나 얇고 변화무쌍한 것인지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거기에 언론인들은 자신들의 무지를 엉뚱한 정보로 채워 왜곡된 ‘현실세계’를 창조하는데 기여한다.

한국이란 아주 고립된 세계에서 볼 때, 저 멀리 서구의 경험과 지식세계는 엄청나게 넓고 깊은 것이지만, 이를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더 큰 다른 세계를 잘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더구나 서구의 세계를 열심히 배우고, 스스로 경험하고 혹은 맹목적으로 추종까지 하지만, 바로 옆 이웃나라 사람들의 문화와 언어에 대해선 사실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 영어 하나만 배우면 세상을 다 배운 것으로 착각하지만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바로 영국의 이웃인 프랑스에서도, 미국의 이웃 나라인 멕시코에서도 영어로는 그 지역 주민들과 제대로 소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좀 부유해졌다는 이유만으로 지난 과거의 한국을 망각하고 동남아와 아프리카 지역 사람들을 무시한다. 인종주의적인 말들은 너무나 서슴없이 해댄다. 반다문화 카페까지 있다. 2005년 유럽에서 만난 미국을 다녀온 한 한국인은 미국인들이 자신을 아프리카 원주민 취급해서 기분이 상했다고 토로하는데, 그 말을 아프리카 사람이 들었다면 얼마나 기분이 상할까? 아프리카 사람들은 막 대해도 되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아프리카’라는 단어가 한국에선 아예 욕이 되어버렸다. 언어라곤 할 줄 아는 것이 영어 밖에 없어도 너나 할 것 없이 백인들에겐 저자세에 또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면서도, 체구가 작고 피부색이 좀 검으면 무시하거나 불쌍하게 생각한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인 루나씨는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더럽다며 진료를 거부당해 엄청난 상처를 받았다. 간호사가 다른 동료에게 하는 말을 들은 것이다. “내 피부가 그렇게 검으냐?”며 필자에게 묻는다. 한국에 온지 3년이 채 되기도 전에 그녀는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살시도를 했다고 한다. 방글라데시는 경제적으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다. 그런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 사람들이 자살률이 세계최고인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자살이 전염된 듯 그녀도 자살시도를 했단다. 참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행복을 찾아 한국에 왔지만 한국사회의 물질적 풍요 속에서 그녀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란 논리는 진실이 아닌 ‘진실 같은 거짓’일 뿐이다.

결혼이주여성 루나씨, photo: Su-Kyung Han

작년 2월 굶어죽은 시나리오 작가에 대해 루나씨는 ‘이렇게 부자인 한국에서 어떻게 굶어 죽을 수가 있느냐?’ 반문하며 한국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욱 슬퍼한다. 자신이 미리 알지 못해 챙겨주지 못했음을 너무나 안타까워한다. 방글라데시에선 가난할지라도 이웃이 굶어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방글라데시의 높은 행복지수를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행복해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녀의 한국어는 놀라울 정도로 유창하다. 

한국어가 유창한 결혼이주여성들은 ‘다문화’를 크게 내건 이런저런 행사에 불려 다닌다. 결혼이주여성들은 종종 다문화행사를 합리화 시키는 홍보용 액세서리이며, 떡의 우끼일 뿐 행사 후엔 그들의 역할도 끝이다. ‘다문화’ 정책과 관련해 정부의 많은 지원이 있기에 수많은 단체들이 다문화 노래를 부르고 있다. ‘다문화 체험’이란 프로그램까지 있어 아예 이주민들을 체험농장의 동물로 취급하는 경향까지 있다. 

특히, 허울 좋은 ‘다문화가정’이란 정책을 알고 보면 무지한 정치인들이 만들어내 미디어들이 퍼뜨린 반다문화정책임을 깨닫게 된다. ‘다문화가정’이란 말뜻을 제대로 알고 있는 한국인들이 얼마나 될까? 한국정부의 ‘다문화가정’은 ‘결혼이주여성’만의 가정을 가리킨다. 즉, 한국여성과 결혼한 남성은 제외된다. ‘다문화’의 말뜻에서 기대할 수 있는 문화가 다른 사람들 간의 결혼으로 생긴 가정을 의미하지도 않으며, 다문화사회에서 온 이주노동자나 난민들은 여기서 배제된다. 정책자들은 더구나 결혼이주민 여성들에게 이주노동자들을 멀리하라는 요구까지 한다. 결혼이주여성들은 ‘한국의 며느리’니 이주노동자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일부 정부정책자들은 이주민들 간의 관계를 ‘다문화’란 이름으로 오히려 이간질 시키고 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좀 부유해졌다는 이유만으로 지난 과거의 한국을 망각하고 동남아와 아프리카 지역 사람들을 무시한다. 인종주의적인 말들은 너무나 서슴없이 해댄다. 반다문화 카페까지 있다. 2005년 유럽에서 만난 미국을 다녀온 한 한국인은 미국인들이 자신을 아프리카 원주민 취급해서 기분이 상했다고 토로하는데, 그 말을 아프리카 사람이 들었다면 얼마나 기분이 상할까? 아프리카 사람들은 막 대해도 되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아프리카’라는 단어가 한국에선 아예 욕이 되어버렸다. 언어라곤 할 줄 아는 것이 영어 밖에 없어도 너나 할 것 없이 백인들에겐 저자세에 또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면서도, 체구가 작고 피부색이 좀 검으면 무시하거나 불쌍하게 생각한다. 

다문화 관련책 커버, photo: Su-Kyung Han

미디어를 통해 잘 알려진 다문화정책은 한국의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방책으로, 필자는 이를 ‘현대판 씨받이’정책으로 일컫는다.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최저로 인구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국가경쟁력 상실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한국 다문화정책의 속내는 한국사회가 다문화사회로 가는 열린 정책이 아니라, ‘다문화’를 빙자한 한국인 만들기 작업인 동화정책이다. 이런 이유로 결혼이주여성들에겐 자신들이 지니고 온 언어, 종교와 문화적 배경을 버리고 한국의 전통적 문화계승이라는 임무가 주어진다. 한국인들도 입지 않는 한복을 입고 김치, 된장, 간장 담그는 법 배우기, 시부모 모시기 등 한국여성들이 거부한 것들이 주요 다문화프로그램을 이루고 있으며 부부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한국인’임을 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홍보하며 세뇌시킨다. 겉으론 한국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해주는 듯이 보인다.

결혼이주민여성들에겐 아이를 낳는 것이 주요한 ‘의무’과제로, 동사무소에서 결혼이주민여성들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며 출산에 대한 조사를 한다. 아이를 왜 아직 낳지 않는지, 아이를 언제 낳을 것인지, 혹은 둘째 아이는 언제 낳을 계획인지를 방문조사하고 있다. 안산에 거주하고 있는 몽고출신 결혼이주여성은 이미 한 아이의 엄마임에도 동사무소에서 온 ‘아주머니’는 둘째 아이는 언제 낳을 것이냐 자꾸 따져 묻기에 “아주머니 며느리에게나 물어보세요!”라고 했다는 웃지 못 할 얘기를 전한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한 여성은 거의 결혼 4년째임에도 신청한 한국국적은 아직도 받지 못하고 있다. 6개월에 한 번씩 비자를 받으러 출입국 사무소에 가면, 늘 받는 질문이 ‘아이는 언제 낳는가?’이다. 심지어 “섹스를 일주일에 몇 번이나 하느냐?”, “남편이 (섹스)잘 하느냐?”, “얼마나 만족하느냐?” 등 이주여성들의 성관계까지 캐물으며 버젓이 성희롱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처럼 성적 표현과 광고들이 미디어 사이트에 도배되고 미성년을 포함한 수많은 여성들에게 성적 발언들이 서슴없이 자행되는 추잡한 습관들이 다른 문화권에서 온 이주여성들에겐 더욱 노골적으로 자행된다. 그래도 이들에겐 비자문제가 걸려있는 터라 욕 한 번 제대로 못하는 실정이다. 결혼이주민여성들 중 많은 수가 한국 국적도 없는 ‘한국의 며느리’들인 것이다. 

설날이 곧 다가온다. 타국에서 온 ‘한국의 며느리’들이 명절상 차리느라 분주할 것이다. 방송들은 저마다 설 명절 프로그램으로 백인들에게 한복을 입히고 게임을 하며 좋다고 웃어 댈 것이다. 한쪽에선 한국인 자신들이 포기한 ‘전통적 문화계승’이라는 하기 싫은 일을 결혼이주여성들에게 떠넘기고, 다른 한쪽에선 의식주마저 서양식으로 바꾸면서 서구 흉내를 내는 한국인들이 백인들에게 한복을 입히고 한국 음식을 먹이며 한국전통문화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인정받기를 원한다. 

곧 설 명절을 맞아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 있는 이주민들은 더욱 외로울 것이다. 새해엔 어떤 누구도 배제되지 않기를 바라며, 모두에게 조금이나마 따뜻한 한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 이 글은 미디어스와 이주민방송(MWTV)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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