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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온 이주민, 나가 있는 이주민

Seoul, 한수경, 2012년, 2월 1일

 

미디어에서 다문화에 대한 담론은 최근의 일이지만, 이주역사는 인류의 태동과 함께한다고 할 만큼 오랜 것이다. 한국인들의 해외 이주 역사만 따져 봐도 일본으로 건너간 삼국시대 선조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람들이 태어난 곳에 평생을 머물지 않고 다른 지역과 다른 나라로 떠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결혼이나 유학처럼 자발적이기도 하지만 전쟁, 분쟁 등 정치적 상황이 만들어낸 강제적인 경우,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반 강제적 행보이기도 하고, 저출산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이며, 또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국가 간에 맺어진 협정의 경우가 있다. 합법적으로 왔다가도 그 나라의 법제도적 미비로 미등록 체류자가 되어 ‘불법체류자’란 딱지를 붙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불안하게 살기도 한다. 타국으로의 이주는 많은 사정들과 이야기들이 어우러진 끊임없이 계속되는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에서 이민자들을 비롯해 이주민에는 다문화가정을 이루는 결혼이주여성과 남성을 포함한 결혼이주민, 이주노동자, 난민, 유학생, 입양아 등 다양한 층으로 이루어진다. 많은 시민단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주민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부정적이고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증)까지 있는 한국은 이 모든 층의 해외 이주의 주역이다. 세계에 퍼져있는 해외 한국교민사회들이 이를 말해주며, 게다가 한국은 ‘영광의 세계 고아수출국 1위’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온 장본인이다. 12억의 인구 인도에 1위 자리를 얼마 전 내어준 후, 현재에도 인구가 많은 개발도상국들을 제친 세계 4위로 여전히 입양아들을 해외로 수출해 ‘돈을 벌고’ 있는 나라다. 

한국에 거주하는 현재 이슈화되고 있는 이주민의 역사는 짧지만, 가야국 김수로왕의 부인인 인도 공주 얘기만 해도 이미 한국은 고대부터 다른 문화와 교류하고 있었다. 설마 허왕옥 공주 혼자서 하늘에서 떨어지듯 한반도에 출현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전설 같은 이야기를 믿는다면 그녀와 함께 왔을 인도지역 사람들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록 아이돌인 고려인 Victor Tsoi, 1986, 출처:Igor Mukhin/Wikimedia Commons

한국인 해외 이주를 먼저 따져보면, 선조들의 일본 이주를 예외로 치더라도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동북에 정착해 살고 있는 조선족들과 러시아 연해주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이 바로 그 예다.

19세기 대기근에 시달린 조선의 농민들은 시베리아로 이주했고, 그들은 고려인으로 불린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당시 최초의 고려인들의 수는 5,310명이었며 점차 그 수가 증가해 1869년엔 극동러시아 지역인 연해주(Примо́рский край : 프리모르스키 지방)에 거주한 고려인들은 그 지역 전체인구의 20%나 됐다. 1897년 당시 러시아 통계에 따르면, 한국말을 하는 인구수는 26,005명(남자: 16,225, 여자: 9,780)이었다. 19세기 초 전 세계인구수가 겨우 10억을 넘었던 것을 가만하면 당시 러시아 거주 한국 이주민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한국인의 러시아지역 이주는 계속 증가해 1914년에 64,309명, 1923년엔 106,817명, 1937년엔 168,259명이었으며 당시 학교가 무려 380개나 설립됐고, 2개 사범학교, 1개 교육학교, 3개의 병원, 1개 극장, 또 6개의 저널과 7개의 신문이 발간됐다. 많은 수는 정치망명자들로 그곳에서 한반도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1989년 붕괴되기 전까지 소련연방엔 약 44만 명의 한국인들이 거주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에 약 50만 명의 고려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주민방송 MWTV 현 대표인 아웅틴툰씨의 말이다. 미얀마에선 계절도 사계절이 아니라 여름, 우기, 건기, 즉 ‘뇌야디’, ‘모야디’, ‘싸웅야디’로 세 계절이다. 단일민족국가가 아닌 미얀마엔 135개 민족들이 평화로이 공존하며, 하나의 언어가 아닌 141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는 다민족, 다종교, 다언어 국가로 말 그대로 다문화사회다. 미얀마뿐이 아니라 그 이웃하고 있는 다른 아시아권 대부분이 다문화사회들로 수많은 소수민족들과 수많은 언어, 종교가 어우러져 공존한다. 미얀마, 부탄, 방글라데시, 라오스 네팔 등의 국경지역엔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국적 없는 사람들도 살고 있다. 천 개 이상의 언어가 있는 인도는 말할 것도 없고, 아프리카 국가들도 수 백 개의 언어들을 사용하는 다문화국가들이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인들이 일본으로의 반강제적 노동자로 일본에 이주한 것과, 태평양 전쟁으로 정신대, 학도병과 징병으로 끌려가 아직 일본에 거주하며 한인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바다.

특히 1902년은 한국정부 주도의 한국인 해외 이주정책이 시작됐던 해로 그 이듬해 1월 121명의 농업 이주민이 하와이에 도착했다. 초기에 약 7000명 정도의 한국인 이주노동자들은 하와이 곳곳의 사탕수수 재배를 했지만 곧 이주의 폭이 다양화되어 군인, 망명자, 유학생 등이 곧 미국 본토 LA와 샌프란시스코에 집중적으로 정착해 교민 1세대를 이루었다. LA의 코리아타운을 모르는 한국인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1960년대를 시작으로 정부 주도의 한국인 노동이주는 남미, 북미, 유럽과 중동으로 넓어졌다. 물론 6.25 전쟁 이후 일부 반공포로들이 이미 남미로 이주하기도 했다. 한국인들의 해외 영농이주 지역은 브라질, 볼리비아,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페루 등 남미국가들이다. 영농이민 명목으로 남미로 진출한 한국인들 중 실제 영농에 종사한 경우는 10%에도 미치지 못해 브라질 정부는 한국인 영농 이주를 한 때 금지하기도 했다. 한인 영농 이민자들은 본래의 이민목적인 농업이 아닌 봉제업 등 의류업계로 전업하는 경우가 많았고, 불법체류가 문제 되기도 했지만, 남미지역 곳곳에 정착해 많은 교민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중동에 진출한 건설이주노동자들과 80년대 말까지도 계속된 간호사 파견은 한국인 해외 이주노동의 역사를 말하고 있으며 독일로 이주한 간호사와 광부들은 독일뿐 아니라 유럽한인사회를 이루는 기초가 되었다. 박정희의 경제발전을 위한 산업역군으로 3500만 달러의 외화벌이로 독일로 파견되었던 단기 계약노동자들, 단어 그대로 직역해 '손님노동자(Gastarbeiter)'들이었던 이들은 독일(서독)사회 최초의 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이었다. 당시 그들이 한국으로 송금한 금액이 총 수출액의 30%에 달했다니 한국 경제발전에 이들의 기여가 얼마나 큰 것인지 상상이 갈 것이다.

 

매년 열리는 독일 마인츠 한인회 신년잔치의 한 장면. 마이츠엔 광부와 간호사였던 교민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photo: Su-Kyung Han

독일의 단기노동정책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손님노동자’들 대부분이 귀환하지 않았다. 일부는 제 3국인 미국, 캐나다, 스위스 등으로 이주해 그곳 교민사회를 이루었으며 또 많은 수가 여전히 독일에 정착해 40년 이상을 체류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손님’이 아닌 2세대 3세대를 이루며 그곳 ‘주민’으로 살고 있다. 남해 독일마을로 일부 귀향한 교민 1세대가 한국의 해외 이주노동역사의 산 증인이다.   

현재 한국의 해외이주민 수는 대략 7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위키피디아 2009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국인 해외이주는 전 세계 175개국에 6,822,720명에 달했다. 그야말로 한국인들은 5대양 6대주로 이주해 곳곳에 코리아타운을 형성하며 각 나라에서 다문화사회의 일부가 되었다. 나라별로 따져보면 중국(2,336,771명, 34%), 미국(2,102,283명, 30%), 일본(912,770명, 13%)에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이주해 살고 있다.

다음의 표는 2009년도 한국인 해외이주 현황으로 전 세계 175개국 중 주요 30개 나라만을 뽑아 정리한 통계자료이다. 

<표> 해외 한국인 이주 현황 (자료: 2009년/175개국 총 6,822,720명 중 30개국 수치)

국가 (명수)

국가 (명수)

국가 (명수)

1. 중국 (2,336,771)

11. 브라질 (48,419)

21. 싱가포르 (13,509)

2. 미국 (2,102,283)

12. 영국 (45,295)

22. 우크라이나 (13,001)

3. 일본 (912,770)

13. 인도네시아 (31,760)

23. 멕시코 (12,072)

4. 캐나다 (223,322)

14. 독일 (31,760)

24. 과테말라 (9,921)

5. 러시아 (222,027)

15. 뉴질랜드 (30,792)

25. 인도 (8,337)

6. 우즈베키스탄 (175,939)

16. 아르헨티나 (22,024)

26. 파라과이 (5,229)

7. 호주 (125,669)

17. 태국 (20.200)

27. 캄보디아 (4,772)

8. 필리핀 (115,400)

18. 키르기스스탄 (18,810)

28. 이태리 (4,203)

9. 카자흐스탄 (103,952)

19. 프랑스 (14,738)

29. 남아공화국 (3,949)

10. 베트남 (84,566)

20. 말레시아 (14,580)

30. 스페인 (3,647)

법무부에 따르면, 2011년 9월 말 현재 한국 체류외국인 수는 총 1,418,149명이다. 한국인구의 2.8%에 달한다. 하지만 이 수치엔 관광객 및 단기체류자(약 23만), 한국계 중국인/조선족(약 40만), 또 재외동포(약 12만)가 포함되어 있다. 한국계 및 동포를 제외하면 약 90만 명 정도로 한국 인구의 1.8%에 달한다. 또한 한국계와 제외동포를 제하면 약 67만 명으로 한국인구의 1.3%에 해당된다. 더구나 조선족들은 동포 대우도 받지 못하고 한국계 중국인으로 계산되고 있다. 이렇게 이주민 수치는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언론보도의 그래프와 수치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 같지만 동시에 왜곡하기도 쉽다.

또 결혼이민은 14만3천으로 총 체류 외국인 수의 10% 정도지만, 그 중 전체 결혼 이민의 20%에 해당하는 30만 명은 한국계중국인(조선족), 즉 중국동포들이다. 이 동포들을 제외한 다문화가정에 속하는 결혼이주여성만을 계산한다면 약 10만 명 정도다. 즉, 실제로 ‘다문화가정’에 대한 지원은 한국정부와 언론이 확성기를 대고 홍보하는 것과는 달리, 또 이로 인해 일반시민들이 인식하는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2011년 9월 말 총 한국 체류외국인 약 142만 명(동포 포함)은 2009년 한국인들의 해외이주 175개국 중 중국거주 한국이주민 235만 명, 또는 미국거주 한국이주민 210만 명만을 비교하더라도 턱도 없이 낮은 수치다. 즉, 중국 체류 한국이주민의 60% 정도밖에 안 되는 수치가 바로 ‘동포’까지 포함시킨 한국체류 전체 이주민 통계수치다. 말하자면, 한국 해외이주민들을 생각할 때 한국인들이 국내 이주민들에 대해 욕을 할 상황이 아니다.

1960년대와 70년대의 한국은 저개발국가로 미얀마나 많은 아프리카 나라들보다도 가난했던 나라다. 당시 한국인들이 인종과 문화가 다른 지역에서 외로움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돈을 벌어 국가와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자신들의 꿈을 이루었듯이, 한국에 들어온 이주민들 또한 똑같은 권리가 있다. 한국 간호사와 광부들의 삶의 터전인 독일의 경우 이주 배경의 인구는 약 20%에 달한다. 한국 이주노동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한인교민들이 독일 가족 및 친구들과 함께 신년음식을 즐기는 모습. photo: Su-Kyung Han

아시아 지역 이주민들이 아무리 피부색이 다르다고 할지언정 한국인과 미국인, 독일인 등 서구인과의 차이, 또 아프리카 사람들의 피부가 아무리 검다한들 한국인과 비교할 때 흑인과 백인의 차이만큼이나 클까 싶다. 한국의 이미지가 좋아졌다지만, 한국인이 즐기는 김치, 된장, 마늘냄새는 서구인들이 여전히 꺼리는 역겨운 냄새이며 개고기 먹는 사람들 혹은 돈밖에 모르는 사람들 또한 한국인 이미지의 일부이기도 하다. 단지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말하자면,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에겐 베트남인과 한국인은 오십보백보의 차이일 뿐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있다. 아시아에서 한국 사람들만큼이나 ‘이주민’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는 나라도 없다. 이주민 이야기는 바로 다름 아닌 ‘어제의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 이야기는 중단된 것도 또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 것도 아니며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진행형이다.

 

* 이 글은 미디어스와 이주민방송(MWTV)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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